지난 1월 말 폐막된 중국 상하이 주요 20개국(G20)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 및 통화정책, 구조개혁정책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자는 공동선언문이 발표되었다.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이 지나도록 세계 경제가 아직 그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고백으로 들렸다. 

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. 물가만 보다가는 물가에 속는 수가 있다. 물가 안정세만 믿고 금리를 내렸다가 인플레이션이 아닌 다른 형태의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.

한국은행은 “…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”하기 위해 설립되었다. 그런데 물가불안이 아니더라도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얼마든지 손상될 수 있다.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, 1997년 말 우리나라 외환위기, 1991년 일본 버블 붕괴, 그리고 1929년 미국 대공황 등이 대표적 사례다. 자국 경제 또는 세계 경제를 웬만한 물가불안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의 엄청난 충격과 고통 속에 빠뜨린 경우들이다. 몇십%, 몇백%의 초인플레이션은 아니었지만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크게 해쳤고 후유증은 오래갔었다. 중앙은행의 궁극적 목적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면 위기방지야말로 물가안정에 못지않은,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책무라 하지 않을 수 없다. 

유의해야 할 점은 위기의 씨앗이 자라던 시기에 물가 상승률은 별로 높지 않았다는 사실이다. 1996∼2000년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평균 2.56%였는데 2001∼2004년 금리 인하 시기에도 평균 2.5%로 금리 인하 이전과 거의 같았다. 

물가가 오르지 않으니 연준(FRB)으로서는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었고, 금리를 너무 낮은 수준에서 오랫동안 유지하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았다. 

금리를 올렸어야 했던 시기에 물가 상승률이 대폭 내려갔던 경우는 더 많았다.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90∼94년 평균 7.0%였다가 외환위기 직전(1995∼97)에는 4.6%로 크게 낮아졌고, 일본 소비자물가도 1981∼85년 평균 2.8%였다가 버블 붕괴 직전의 저금리 기간(1986∼89)에는 0.9%로 대폭 내려갔다.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전쟁 인플레이션 기간(1915∼20)의 미국 도매물가 상승률도 평균 15.2%였지만 자산버블이 왕성하게 부풀던 대공황 직전까지의 기간(1922∼28)에는 평균 0.02%에 불과했다.

미루어 생각하건대, 유가폭락으로 물가가 오르지 않는 지금 같은 때가 한국은행으로서는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시기일지 모른다.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기의 원인이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, 배전의 주의를 기울일 때다. 

2015년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해도 좋았던 가장 중요한 배경은 2008년 GDP 대비 168%였던 민간부채가 2012년에는 GDP 대비 148%로 빠르게 하향 안정화된 점이었다.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떤가? 2008년 GDP 대비 민간부채는 미국과 비슷한 168.6%였다가 그 이후 감소는커녕 2015년 6월 말 190.9%에 이르기까지 그칠 줄 모르고 증가하고 있다. 

금리 인하에 무조건 반대하려는 게 아니다. 1∼2년 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본격화하기 전에 민간대출 구조개선 등으로 금융 안정을 도모해 두자는 얘기다. 그런 다음에라야 안심하고 금리를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. 그렇게 해두어야 미국 금리에 우리나라 시장금리가 따라 올라가더라도 위기 발생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. 

다행스럽게도 올해 1월 은행권 가계대출은 신규 가계부채에 대한 리스크 관리 강화 등에 힘입어 증가세가 크게 꺾였다. 이런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. 

아울러 은행권 가계대출보다 규모가 더 커진 비은행권 가계대출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. 상하이 G20 공동선언문처럼 지금은 경기회복에 총력을 기울일 때지만, 우리의 입장에서는 금융 안정도 그에 못지않게,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일 수 있다. 정책당국의 현명한 판단과 행운을 빈다